지리산 암자 중 ‘제일은 금대(金臺)’라는 말이 있다. 금대암은 마천면 가흥리에 있는 전통사찰 제 48호이다. 신라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나한전을 모신 후 신라 태종 무열왕 때 행호조사(行乎租師)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지형이 지리산 봉우리들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절경 때문에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수도 성취했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는 암자이다.
이은리 석불상림(上林)은 여름의 녹음이 가득하다. 푸른 숲길을 따라 가다 이은리(吏隱里) 석불(石佛.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를 만난다. 원래 망가사(望迦寺)에 있었다고 한다.
목조 건물에는 ‘덕유산장수사조계문(德裕山長水寺曹溪門)''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인 용추사 일주문이라고 했다. 장수사가 왜 용추사 바뀌었을까. 신라 소지왕 때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장수사를 창건하였다. 신라시대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을 비롯해 조선시대 무학(舞鶴). 서산(西山). 사명(四溟) 등 여러 고승이 수도한 이름 있는 절이었다.
봄의 한창 무르익을 무렵 수동면 원평리를 지나는 길이었다. 따가운 햇볕 속에 홍살문이 보였고 솟을삼문이 보였다. 청계서원(靑溪書院.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6호)이었다. 처음에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홍살문과 솟을삼문을 외면했다.
함양읍 운림리 보림사(寶林寺)에 미륵전(彌勒殿)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모셔져 있을 것이다. 미륵은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가 될 보살이다. 경남 지역에는 미륵보살상이 흔하지 않다. 그래서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하며 절집으로 향한다.
뙤약볕 내리는 곳에 파란 잔디가 펼쳐져 있고 ‘일두 정여창 고택 홍보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담장을 따라 간 곳에 솟을 대문을 만났습니다. 대문에는 나라에서 내린 충효정려(忠孝旌閭) 패가 다섯 개나 걸려있었습니다. 활짝 열려진 대문 안에는 오래된 풍경이 보였습니다. 저는 조심스레 발을 옮기며 오래된 풍경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상연대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암자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아픈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던 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로부터 ‘상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상연(上蓮)은 ‘연꽃의 위’라는 뜻이다. 그 자리는 부처님의 자리이기도 하다.
명종 7년에 선생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이 서원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명종 21년 서원 곁에 있는 시내 이름을 따서 ‘남계(灆溪)’라는 이름으로 사액(賜額)을 받았습니다.
그리운 사람에게 책 한 권을 보내고 우체국 현관을 나설 때였다. 검은 건물이 눈앞을 가로막아 섰다. 학사루였다. 항상 같은 자리.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누각이 오늘도 나의 마음을 잡는다. 발걸음을 작은 도로를 건너 학사루로 향한다.
감로왕도는 조선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장르의 불화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만 볼 수 있다. 옛 조상은 정성껏 천도재를 열어 부처님을 감동시키면. 방황하고 있는 혼령을 비롯해 지옥 혹은 아귀도에 떨어진 영혼이 천상의 영액인 ‘감로(甘露)’를 받아 새 생명을 얻거나 극락에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감로왕도이다.
안의면에 있는 광풍루光風樓를 지나 꺾어 든 길에서 사천왕을 만났다. 사천왕은 파출소 맞은편에 있는 일주문 속에 서있었다. 질박하게 채색된 단청이 없었다면 여염집 대문처럼 보이는 산문山門이었다.
가랑비가 내린다. 잿빛 도로는 빗물에 토닥토닥 젖는다. 길이 마치 들기름을 발라놓은 듯 자르르 윤기가 흐른다. 반질반질한 길을 따라 무작정 산속으로 파고든다. 산골짜기는 온통 안개…. 안개가 점령해 있다.
벽송사에는 슬픈 역사가 하나 있다. 한국 전쟁 당시 절집은 빨치산의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고 있어 국군은 불을 질렀다. 거리를 두고 타오르는 큰 산불은 장엄했을 법하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아픔을 먹으며 생겨난 불꽃은 커다란 불두화로 피어올라 하늘을 밝혔을지도 모른다.
마애불은 거대하고 강건했다. 그리고 화려했다. 상호는 완만하며 온화한 느낌을 주었다. 입술은 붉은 주홍색이 칠해져 있어 마치 부처님이 야시시한 미소를 흘리는 듯 했다. 그 모습에 나의 양 입술 끝도 저절로 올라갔다. 커다란 바위 면을 깎아 부조로 조성한 불상은 그 키가 5.80m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되어 광배. 불신.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다.
함양읍에는 보물이 있다. 너무나 커서 한번 보면 깜짝 놀랄 정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큰 보물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물이 있다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내가 보물을 알게 된 것은 삼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한참 지난 후였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무렵. 우연히 함양중학교 앞을 지나가다 ‘국가지정보물 제376호 석조여래좌상’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